3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내가 목사 되기를 서원?… “주님, 실수이니 물러 주세요”


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가 2017년 3월 대전 한밭제일장로교회에서 개최된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사랑하는 주님은 흑암 속 헤매는 나를 향해 빛으로 다가오셨다. 그분은 교회가 없던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주시고 그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창세 전에 예정하신 은총인지라, 누가 전도하지 않았는데도 교회에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과 함께 출발한 내 믿음의 여정은 한 치도 어김없으신 그분의 치밀하신 계획 속에서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967년쯤 충남 연산 양동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했지만 3년이 넘도록 주님과 만남이 없었다. 당시 교회에선 은사 집회를 많이 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방언과 각종 은사를 받았다. 온 교회가 흥분과 감동, 눈물의 도가니였다. 그런데 유독 나만 영적 이방인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은사도 받아야겠고 남들처럼 방언도 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간절히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난다 했던가. 드디어 내게도 주님의 손길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나는 겉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죄지은 것이라곤 일곱 살 때의 난폭함, 친구와 싸워 코피를 터뜨린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니 회개할 것이 없어서 문제였다. 우리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는데 나는 죄인이 아니라 자칭 의인이었다. 그러니 주님을 영접할 수 없었다.

속으로는 온갖 죄를 다 지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착한 척, 의로운 척하는 나를 향해 말씀의 검이 사정없이 꽂히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조명하셨다. 내 안이 그렇게 더러운 줄 몰랐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 15:18~2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오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그전까지 나는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는 철저한 외식주의자였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을 통해 깊이 만나주셨다. 주님 앞에 사악하고 누추한 내 모든 죄악을 토해 내고서야 영적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아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여다본 후 내 안에 복음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죄 문제로 주님과 씨름을 하다 보니 예수님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분이 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 내 삶의 모든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주님을 만난 후에는 내게 아무것도 귀한 것이 없었다. 전후좌우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급한 성격대로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주여, 이 몸 바쳐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내 입에서 쏟아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무지한 가운데 “주여” “아멘”을 쏟아냈다.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딸 것 같았지만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한 고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주여, 이건 실수입니다.”

주변에선 주님과 이뤄진 대화가 소위 서원이라고 했다. 서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언어의 인을 치고 말았으니 실수치고는 메가톤급이었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는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다. 어쩌다 세례식 때 도회지에서 목사님이 오시면 그분을 천사처럼 생각했다. 우러러보기에도 송구스러운 분들이었다. 도회지 목사님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 것처럼 느끼던 시대였다.

도시에서 오시는 목사님은 인품도, 영성도, 실력도 대단한 분들로 보였다. 그런데 내가 그분처럼 목사가 된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지만 그것은 분명 그분의 실수요, 나의 무지로 일어난 부도날 계약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낮은 학력과 자존감이 장애물이었다. ‘중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무슨 목사가 된단 말인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리치는 것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목사가 된다니 이건 분명 아니다.’

더 오래 끌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될 것은 사전에 고쳐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주님께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결단했다. 하나님과 웃기는 흥정을 시작했다.

“주님, 이것은 분명 제 실수입니다. 물려 주세요. 저 같은 것이 어떻게 목사가 되겠어요. 제발 한 번만 봐 주세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 아시면서 어떻게 제게 목사가 되라 하실 수 있어요. 주님, 한 번만 없던 것으로 물러주세요. 대신 장로가 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애절하게 간구했지만 주님은 묵묵부답이셨다. 기도는 했지만, 답이 없으니 마음은 시원치 않았다. 답답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세월을 축내고 있었다. 주님의 안타까운 시선을 외면한 채 나는 나대로의 길을 가고 있었다. 돈 벌 궁리를 했다. 그러다 일단 입대부터 했다. 1972년의 일이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장자·상속자는 같은 의미… 하나님 자녀의 길, 8가지 질문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이자 장자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장자를 살리시려고 어린 양의 피라는 특별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구약에서 장자의 신분인 이스라엘 민족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얻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장자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

아주 간단한 말씀이지만 이 안에 엄청난 신비가 담겨 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을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의 길,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토대로 8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직면해야 한다.

첫째, 나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둘째, 진정으로 영접했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계시는가.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 계신다면 그분을 내 주로 섬기고 있는가. 넷째, 나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있는가.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있다면 그 이름의 권세를 누리고 있는가. 여섯째, 나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가. 일곱째,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확신이 있는가. 여덟째,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위의 질문은 아주 심각한 것들이다. 우리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정말 예수님의 이름, 십자가 권세를 믿고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했다면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머리와 입술로만 믿기 때문이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고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이기 때문에 왕 중 왕이신 그분의 자녀로서 권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장자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음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5~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특히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하게 됐다.

위의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이다.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 아들 내 장자라”고 하신 말씀은 신약에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말씀과 동일한 표현이다. 무엇이 동일할까. 아들과 자녀, 장자와 상속자가 서로 같은 의미다. 장자와 상속자가 같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상속자는 장자다. 장자만 아버지의 계대권을 이어받는다. 차자는 재산 일부를 받을 수 있지만, 가계의 상속은 오직 장자만 받는 것으로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 그 이름을 올려놓았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 그렇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인 장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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