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스마트폰이 영성 방해… 구원 위해 ‘4014 금식 기도’ 시작

이영환 대전 한밭제일교회 원로목사가 지난해 10월 교회에서 열린 
‘4014 금식기도’ 7기 수료식에서 목회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하나님은 장자권과 함께 ‘4014 금식기도’라는 선물을 주셨다. 4014는 40일 금식을 매주 3일씩 13주간 하고 나머지 1일을 14주째에 해서 40일 금식기도를 채우는 것을 뜻한다. 2013년 12월부터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자권 사역에 들어갔지만, 4014 금식기도라는 것은 애당초 계획에 없었다.


2017년 5월 목회자 부부 60쌍을 충북 옥천 수생식물원에 초청했다. 첫날 간단히 예배드리고 푹 쉬려고 했는데, 첫 시간부터 성령께서 강단에 선 나를 계속 붙잡고 역사하셨다. 밤 11시가 넘도록 말씀과 기도가 이어졌는데, 이런 감동이 있었다. “40일 금식기도 운동을 하라. 그 금식기도를 14주에 걸쳐 나눠서 하라.”


4014 금식기도는 말씀과 기도를 하루에 7시간 이상 하는 것이다. 14주간 신구약 성경을 1독하고 많은 말씀을 암송한다. 특별히 지켜야 할 것은 미디어 절제다.


옛날에는 우리의 영을 어지럽게 하는 문화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성도들이 주님 사랑하는 시간과 마음을 뺏기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책상마다 들어앉아 더 현란하게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을 어지럽게 하면서 성도들의 영성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는 그나마 덜하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후로는 지구촌 전체에 거대한 영적 쓰나미가 몰아닥쳤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는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시청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손안에서 온종일 떠나지 않고 붙어 다닌다.


물론 스마트폰에도 유익한 점이 있다. 하지만 영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너무 부정적이다. 스마트폰은 별 영양가 없는 콘텐츠에 시간을 빼앗기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말씀과 기도의 약화를 가져온다. 그뿐인가. 그 안에는 온갖 더럽고 사악한 것, 음란하고 방탕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망하게 할 영적 시한폭탄이 장착돼 있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생각하면 암담할 뿐이다.


스마트폰은 성도들의 일상생활까지 조종한다. 식탁에도, 차 안에도, 부부의 침실에도, 심지어 목사의 강단에도 함께 따라가 깊고 짙은 영성을 방해한다.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도 금식이 필요하다.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40일 기도를 14주간 나눠 실시하기로 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갑자기 40일 금식기도를 14주간 매일 3일씩 하라고 하니 기절초풍할 만한 상황이었다. 선뜻 4014 금식기도를 할 사람이 나올 리 없었다. 순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분들에게 한 교회당 100만원씩 격려금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4014에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1회에 80명, 2회에 300명이 넘는 분들이 동참했다. 참가대상은 목회자와 사모, 전도사, 선교사였다. 격려금만 3억원이 지출됐다. 한밭제일교회는 당시 장자교육관을 건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빚을 내서 지급했다. 이후 선교현장에서 4014 금식기도를 가르쳤다. 동남아 유럽 미국 캐나다 남미 아프리카 등에서 사역하는 수많은 선교사가 동참했다.


나는 이 금식기도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고 확신한다. 특별히 이 4014 금식기도는 한밭제일교회 후임 목회자를 정말 목회자다운 목회자로 세운 놀라운 은총의 도구였다.


김종진 목사가 후임 목회자가 됐을 때는 40대 초반이었다. 처음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식을 시작했는데 2~3주 진행하면서 놀라운 은혜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영적인 힘을 얻어 신바람 나게 4014 금식을 완주했다. 짧은 석 달이었는데 그 기간 교회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담임목사가 될 분이 매주 3일씩 금식하고 강단에 서니 성도들은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강단에 서는 후임 목사가 금식을 하고 서니 영적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후임 목사의 4014 금식으로 영적 해갈을 맛본 성도들이 후임 목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됐다. 4014 금식기도는 한밭제일교회에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덕분에 전혀 잡음 없이 교회 리더십을 이양하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


이제 4014 금식기도를 더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계획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일단은 목회자들이 목회하면서 13주간 매주 월요일에 입소해 금요일에 퇴소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목회자들이 함께 금식하며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력투구하고 금요일 오후에 교회에 가서 저녁 심야 예배와 주일예배를 드리면 어떻게 될까. 월요일 다시 입소해 합숙하면서 강한 훈련을 소화한다면 목회현장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 기간 하루 12시간씩 오직 말씀 암송, 강력하게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예수님 군대를 만들려고 한다.


오는 4월 27일부터 7월 24일까지 제1기 금식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훈련에 적합한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 장자권은 이것이다
표적과 치유는 복음의 거룩한 통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1,3)


하나님께서 천지를 어떻게 만드셨는가. 바로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과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연히 명령과 선포 없이도 천지를 만드실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생각이 아니라 말씀으로 만드셨다. 그 말씀이 바로 명령과 선포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명령 선포하시니 빛이 있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다. 예수님도 사역하실 때 명령과 선포를 하셨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 1:25~26)


예수님이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실 때 어떻게 하셨는가. 명령하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전능하시니까 생각만으로 사역하신 것이 아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때도 예수님은 분명히 명령하고 선포하셨다.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도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셨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셨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명령하고 선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를 내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할 수 있는 특권을 안겨주셨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있어서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명령하고 선포할 수 있는가. 이는 예수님이 주시는 특권 안에서만 가능한 놀라운 은총이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명령·선포했을 때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평안함이 그에게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평안을 선포하고 명령한 자에게 돌아온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진리이기에 우리는 어디 가든지 먼저 예수 이름으로 “평안할지어다”라고 명령하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선포다. 내가 입을 열어 선포하고 명령할 때에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는 분이시다.


표적이 복음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표적과 치유는 복음의 거룩한 통로가 되기에 중요하다. 베드로의 사역 가운데 욥바의 다비다(도르가)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다비다는 믿음의 여인이었다. 그는 바느질을 통해 많은 사람을 섬긴 여인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 베드로가 현장에서 어떻게 했는가. 베드로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모든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모든 것을 움직여야 한다. 베드로는 기도한 다음 어떻게 했는가.


그는 다비다의 시체를 향해 이렇게 명령하고 선포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베드로가 명령·선포했을 때 죽은 다비다가 살아나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 베드로의 사역 현장에 있었던 일이다. 베드로는 분명히 주님이 하신 말씀인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그도 할 것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명령하고 선포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일하셨다.


바울의 사역에서 명령·선포한 현장을 만나 보자. 루스드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기 누가 있었는가.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명령·선포했다. 그 명령과 선포 후에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


성경 속에 있는 이 모든 일이 그 시대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말씀은 오늘도 살아있어야 한다. 나에게도 살아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바울이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장자권은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명령·선포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이영환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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