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하나님, 삽자루 대신 성경 책 잡는 군종병 되게 해주세요”

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가 1974년 군종 사병으로 복무할 당시 광주 군부대에서 합동세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1972년 10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6주간 훈련을 마치고 김해 공병학교에서 배관보일러 교육을 받았다. 배치된 곳은 광주의 부대였다. 후방 지역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행복한 마음으로 광주 상무대에 도착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헌병이 소리를 쳤다.


 “야, 이 새끼들아. 여기가 어딘 줄 아나. 그 유명한 1207 건공단(건설공병단)이다. 3년 동안 시멘트 3포대를 마시고 야전삽 세 자루를 닳아서 없애야 제대하는 육군 골병대다.”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중대본부에서 제일 먼저 물품 검사를 했다. 담당 상병이 옷과 소지품이 들어 있는 ‘따블백’을 거꾸로 쏟았다. 제일 먼저 성경책이 떨어졌다.


 상병이 성경책을 보더니 반색했다. “예수 믿나.” “예, 그렇습니다.” “나도 믿는다. 혹시 신학교 다니다 왔는가.” “정식 신학교는 아니고 통신신학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그는 나를 내무반에 데리고 가서 이렇게 소개했다.


 “오늘 들어온 이영환 일병은 사회에서 신학교에 다니다 왔으니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기 바란다.” 그날부터 나는 신학생으로 통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육영수 여사가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사찰이 많이 건립됐다. 광주 상무대에 큰 절을 짓고 있었는데 대형 연못도 만들고 있었다.


 하필이면 거기에 배치됐다. 영 마음에 거슬렸다. “주님,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 기도했는데 감사하게도 파견 공사 자리가 생겼다. 전북 김제였다. 하지만 그곳도 김제 금산사로 가는 도로포장을 하는 작업장이었다. 여전히 부담이 됐다. 처음에는 공사장에 나갔는데 감사하게도 중학교 선배가 중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사장에는 나가지 않고 내무반에서 일하게 됐다.


 입대할 때 나의 기도 제목은 단순했다. “주여, 군 복무 3년 동안 믿음만은 변치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도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인데 신앙만은 철저해야 한다고 다짐했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예배는 철저하게 지켰다.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내무반에서 온갖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다. 매도 맞았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책잡히면 안 된다. 무조건 열심히 하자.’ 시간만 되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걸레를 잡고 내무반을 닦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 모두가 나를 인정하게 됐다. 


 그러다 설레는 첫 휴가를 나왔는데 나와 함께 입대해 군종사병이 된 친구를 만났다. “영환아, 지금부터 기도 제목을 바꿔보는 게 어때.” “어떻게 바꾸면 되는데.” “군종사병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봐.” “우리 부대는 공병대고 군목도 없다. 기도해 봐야 소용없어.” “거 참,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믿고 기도해 봐.”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누구는 군종사병이 되고 누구는 공병으로 삽을 들어야 합니까. 저도 군종사병이 되게 해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들어갔더니 그새 건공단에 새로운 군목님이 부임하셨다.


 군목님은 16개 중대의 군종사병을 소집했다. 예배시간에 군목님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직은 부대 사정을 모르니까 예배시간에 누구든지 성령님의 감동하시는 사람이 기도하십시오.” 그때 영적으로 아주 뜨거운 상태였기에 얼른 대표기도를 했다. 그 대표기도 덕분에 나는 1207 건공단의 군종사병이 됐다. 실로 놀라운 역사였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었다. 기도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들으시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거나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부대에 모씨 성을 지닌 중위가 있었다. 한날은 부대원들을 집합시키더니 술잔을 돌렸다. “이영환, 술잔 받아.”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뭐야, 내무반장 나와!” 모 중위는 워커 발로 내무반 최고참 발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살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주르르 흘렀다. 다들 마시는 시늉이라도 하라는 눈치였다. 


 난감한 시간이 흘렀다. 할 수 있는 건 기도였다. “주님,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그때 번쩍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모 중위를 감싸 안고 내무반 밖으로 나갔다. “모 중위님, 제가 예수 믿는 것을 아시면서 왜 그러시는 겁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 중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영환, 미안하다. 사실 나도 장로 아들이다. 군대에서 너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해서 그랬다.” 


 하나님의 은혜로 군종사병이 된 나는 목사님을 따라서 열심히 사역에 임했다. 지금 돌아봐도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당시 단장님은 노정기 대령이셨는데 직접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군목님이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후원하셨다. 그 후원에 힘입어 두 차례 370여명의 합동 세례식을 베풀 수 있었다. 아마도 공병대에서 이런 세례식을 베푼 것은 우리나라 군 역사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34개월간 군 생활을 하고 75년 8월에 제대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하늘나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 기록된 자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하셨다. 신약 성경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자녀인데 상속자인 장자인 것이다.(롬 8:17)


 우리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 안에서 하나님의 장자가 됐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하늘나라에는 장자들의 교회가 있다.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히 12:2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늘에 기록된’이란 말씀이다. 하늘에 무엇이 기록됐다는 것인가. 바로 우리의 이름이다. 예수님은 70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사도 요한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가셨다. 요한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었다. 하나는 행위를 기록한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명책이었다.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죽은 자들이 모두 다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심판 후에는 다 불 못에 던져지는데 누구도 예외가 없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남녀노소 누구든 심판을 면할 길은 오직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길뿐이다.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에서 ‘하늘에 기록된’이란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것을 말한다. 왜 하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돼야 하는가. 이유는 오직 하나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 곧 지옥에 던져지기 때문이다. 지옥의 불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오직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생명책이란 무엇인가. 생명책이 무엇이기에 거기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다 지옥 불에 던져지는가. 성경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성경은 분명히 새 하늘과 새 땅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들을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확언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늘에 기록된’이란 말씀과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말씀이다. 하늘나라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하나님의 장자들이다.


 우리가 또 주목할 것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서의 ‘어린 양’이다. ‘어린 양’은 누구신가.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너희 어린 양은…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출 12:5~7)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출 12:23)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구약이나 신약이나 구원은 오직 어린 양의 피 안에서만 존재한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의 자녀이자 장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희생된 유월절 어린 양, 그는 누구였는가. 그 어린 양은 곧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이셨다.


 어린 양의 피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다 하나님의 장자들이다. 하나님은 어린 양, 예수님의 피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을 하늘에 있는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하고 계신다. 어린 양 예수님의 피 안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동일하게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됐음을 믿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장자답게, 어린 양 예수님의 피 안에서 구원받은 자답게 죄악을 이기고 승리해야 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영광에 합당한 거룩한 삶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09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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