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네 목양에서 기름지고 살진 양 되도록 기도하라”

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가 1980년 개척해 2년 뒤 입당한 대전 서구 도마동 한밭제일장로교회 전경. 
이 건물은 1997년 대전 관저동으로 예배당을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됐다.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기로 비전을 가졌지만, 대형교회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해결되지 않았다. “교회만 크면 다냐. 작은 교회 성도들이나 빼앗아 가고 담임목사가 자기 성도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게 진짜 목회냐. 교회가 무슨 사업장이냐.”


1980년대 당시 조용기 목사님이 장로교회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나 역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를 향해 비판의 칼날을 사정없이 들이대고 있었다.


1980년 교회를 개척한 뒤 2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교회가 부흥될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영적 문제가 찾아왔다. 그러니 교회가 부흥될 리가 없었다. 목사 자신의 영적 문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겠는가. 문제는 이웃교회가 부흥된다는 데 있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꼭 나였다. 이웃교회가 부흥되니 아랫배가 사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 된 배가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아파진다는 점이다. 시기란 녀석은 마치 녹슨 무딘 칼날처럼 어딘가 숨어 있다가 기회만 있으면 예리한 검이 돼 치명적인 곳에 비수를 꽂는다.


금식을 밥 먹듯이 한다고 아내에게 구박받던 나였다. 동역자들에게 그렇게 목회해서 건강 잃으면 누가 알아주느냐고 충고를 받던 때였다. 오죽하면 항상 삐쩍 말라 초라한 모습을 본 친척들이 ‘너의 외모를 보고 누가 예수 믿겠느냐’고 구박했다. 젊은 사모를 놔두고 강단이 잠자리였던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웃 교회의 부흥에 배가 아프다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렇게 영성 운운하던 내가 다른 교회를 향해 배가 아프다니, 이건 정말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너무 참담하다. 겨우 이 정도가 내 영적 현주소란 말인가.’


초라한 내 모습을 갖고 주님 앞에 섰다. “주님, 죄송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웃교회를 보면 기쁨보다 시기심으로 배가 아픕니다. 주님, 저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이 시기심을 좀 제거해 주세요.”


문제는 기도하는 강단 앞에선 전혀 어려움이 없다가 현실에 닥치면 허락도 없이 시기란 놈이 튀어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때마다 외쳤다. “대형교회를 시기하는 더러운 사단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 나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내 마음에서 활동을 중지할지어다!”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령해도 그때뿐이었다. 너무 괴로웠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어느 날, 주님께서 대화를 청해 오셨다. “얘야, 한 영혼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지요.” “그렇다면 100명의 영혼은.” “100명의 영혼은 더 귀합니다.” “그럼 1000명은.” “1000명의 영혼은 더 귀합니다.” “그럼 1만명은.”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얘야, 넌 교회와 영혼에 대한 접근이 전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면 1만명이나 10만명의 영혼은 더 귀하겠지. 네가 비판하는 대형교회의 주인이 바로 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면 그리도 귀한 영혼을 내가 아무에게나 맡기겠느냐. 대형교회를 비판하려 하지 말고 많은 양들이 네 목양에서 기름지고 살진 양이 되도록 기도해라. 나는 누구든 내 사랑하는 교회를 제 마음대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주님이 또 말씀하셨다. “너도 교회가 부흥돼 큰 교회를 섬기고 싶지 않으냐.” 난 차마 입을 열어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목회자치고 대형교회를 섬기고 싶지 않은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너도 교회가 부흥돼 대형교회를 섬기고 싶으면서 그런 교회를 비난한다면 내가 어찌 네 교회를 부흥시켜 주겠느냐.” 정곡을 찌르시는 주님의 말씀 앞에 부끄러워 입을 열 수 없었다. 간절히 회개하면서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과 정죄를 접고 자유하게 됐다.


주님 말씀이 100퍼센트 옳았다.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은 우리가 따질 것이 아니었다. 한 영혼의 가치를 봐야 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모인 교회라는 공동체를 무슨 사업장처럼 봐선 안 된다. 모든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에 모두 소중하다. 성도 수가 많은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손뼉을 쳐야 하고 축복하며 기뻐해야 할 일이다. 주인 되시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혹자는 대형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질이 있게 마련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이 오래 존속될 수 없듯 기둥과 들보, 작은 기둥이 튼실하게 버티지 않으면 큰 건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대형교회도 마찬가지다. 한 교회가 성장했다면 분명 성장할 수밖에 없는 희생이란 기초가 있기 마련이다. 대형교회 중에 이유 없이 성장한 교회가 있는가. 대형교회에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질 좋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주님께서 주관하시는 교회가 어찌 실수로 커지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질과 양은 정비례할 수밖에 없다. 대형교회에 대한 시기심은 그렇게 해결을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영환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7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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