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능력 없는데 한밭 제일의 목양하라?… 사단 소리로 의심

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왼쪽)가 1982년 3월 대전 서구 도마동 교회 부지에서
한밭제일교회 기공예배를 드리고 노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1982년 5월 예배당을 건축하고 나니 목양에 강렬한 힘이 실렸다. 나는 원래 시골에서 30명을 앉혀놓고 목회하겠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고 나니 도시 목회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성도 몇 명과 함께 목회할 것인지 막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300명은 무리였다. 30대 초반, 물불 가리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심방하는 일 외에 강단을 떠나지 않았다. 새 교회당을 건축 후 5년쯤 되었을 때 300여명이 출석했다.


30대 중반에 다시 목회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조그마한 기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강단과 기도원에서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도원에서 한참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라!”


분명 사단의 소리였다. 시골교회에서 목회해야 할 내가 주님 은혜로 도시에서 예배당을 건축하니, 교만 마귀가 나를 넘어뜨리려 시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소리로 외쳤다.


“사단아, 물러가라! 교만 마귀야, 물러가라!” 강력하게 외치고는 서둘러 기도를 마쳤다. 기도는 마쳤지만 무언가 찜찜했다. 어린 나이에 목회가 조금 되니 어느새 교만해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다시 기도원을 찾았다. 어제와 똑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라!” 그때 예수님을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도 금식기도 후에 마귀가 세 번이나 시험하지 않았던가. 일언지하에 철퇴를 가했다.


“이놈의 사단아, 물러가라! 교만 마귀는 내 안에서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내가 보이지 않게 교만해져 있는 것이다. 더 겸손해지자.’


그날 기도원에서 잠자리에 들려고 누워 있었다. 왠지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갑자기 사무엘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실 때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경험이 없어 분별하지 못하고 세 번이나 엘리 제사장을 찾아갔다.


‘만약에 사무엘처럼 주님이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떻게 하지. 설마 주님께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지. 내 주제에 어떻게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해. 이건 아니야. 주님의 음성이 아니고 사단의 소리가 분명해. 아니야, 똑같은 말씀이 두 번씩이나 들린 것을 보면 주님의 음성일 수도 있어.’


그렇게 분별을 못 해서 갈등할 때 실낱같은 비전의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주님이 하신다면 못할 것도 없지.’ 이제껏 단 한 번도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시 대전중앙교회 등 대전의 대형교회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런 교회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당시 내겐 치유 받지 못한 거절의 상처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자존감은 형편없이 낮은 상태였다. ‘나 같은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더 무얼 바래. 한밭 제일 목양이라니, 그건 환상이야!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할 수 있어? 나는 이 정도면 됐어. 그건 욕심이야. 나 같은 것은 큰일은 할 수 없어.’


매사에 자신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내 안에 깊게 뿌리 내린 부정적 자아관이 회복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만일 내일도 기도할 때에 똑같은 음성이 들린다면 주님이 하신 말씀인 줄 알리라. 그때는 주님과 대화를 하리라.’


다음 날 같은 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문제를 들고 주님 앞에 선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일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전날과 다름없는 음성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라!” 나는 흥분했고 전율했다. 주님의 음성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가슴 벅차도록 떨려오는 감동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주님과 대화의 창을 열기 시작했다.


“주님, 저 같은 것이 어떻게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할 수 있나요?” 이 물음에 주님은 답하지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되물으셨다.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하려면 최우선적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니?” “그야, 설교도 잘해야 하겠고요. 지식도 있어야지요. 대인관계도 잘해야 하구요. 조직행정도 잘해야 하구요. 리더십도 있어야겠지요. 얼굴도 웬만큼 생겨야 하구요….”


나는 이때가 기회라 싶어 평상시 하고 싶었던 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물으셨다. “그런 것들 말고.” 전혀 예상도 못 했던, 허를 찌르는 말씀이셨다. 순간, 내 입에서 용수철처럼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그야, 대전에 계신 목사님들 가운데 제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면 되겠네요.” ‘오, 주여. 이런 황당한 말이 튀어나오다니….’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무엇인가 강한 힘이 치솟아 나를 압도했다.


‘내가 지식이 있고 설교도 잘하고, 리더십과 화술, 대인 관계, 조직행정을 잘해서 한밭 제일의 목양을 한다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날 사랑하사 날 위해 생명을 주신 내 주님을 사랑하는 거야 못 할 것이 없지. 사랑이라면 나도 할 수 있어. 그래, 사랑이야, 사랑. 내 주님 사랑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야호! 사랑이다! 주님 사랑이라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주님과의 사랑에서 대전의 다른 어떤 목사님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생겼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예수님 영접한 내게도 권세 살아있어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들어가 보자.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있는가.’ 예수쟁이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든지 그렇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선명하게 따져 봐야 한다.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 예수 이름에 어떤 권세가 있는가.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 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사 9:6)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시다.(빌 2:5~6)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사람들과 같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빌 2:7)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을 하시고 종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이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 흘리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빌 2:7~8)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다.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신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의 모든 무릎이 꿇려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무릎이 오직 예수님의 이름 앞에만 무릎을 꿇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각종 영적 세계다. 거기에는 천사를 포함해서 사탄, 마귀와 모든 악하고 더러운 영들이 다 포함된다. 동시에 인간계와 자연계의 모든 무릎이 오직 예수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예수님 이름의 권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수님을 영접한 나에게는 바로 이 권세가 살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을 마음껏 누리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셨다. 그러면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3~14) 예수님의 이름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귀하고 중하신 이름이시다. 이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이제 세 번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이 질문 앞에 자신 있게 “아멘, 아멘” 할 수 있는가. 정말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이신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삶은 이 정도에 머물 수 없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시라면 이제 더 당당하게 선포하고 명령하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세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시라면 당연히 나의 아빠이신 그분의 권세가 나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면 당연히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야 하고 서로 사랑하며 지내야 한다. 늘 대화하고 함께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내가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답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가 화답하는 관계가 지속되어야 한다. 그분과의 첫사랑에 겨워서 날마다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야 한다. 나의 아빠이신 하나님과의 첫사랑 대화를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내주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나의 아빠로 섬기고 있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아빠이신 하나님과 하루에 얼마나 대화하고 있는가. 그분의 말씀을 대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그분에게 말씀을 드리는 시간은 또 얼마나 되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는 자가 하나님과 대화도 하지 않고 온종일 세상에 묻혀서 세상만 사랑한다면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다. 매일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오직 세상이 전부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5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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