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십일조 아랫동서 교회에 내겠다”… “함께 망하려고?”

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뒷줄 왼쪽)가 1980년 대전 한밭제일교회 개척시절 
전 교인 수련회에 참석한 성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980년 3월 대전 중구 유천동 허름한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대전에서 제일가는 교회, 한밭에서 제일 좋은 교회를 만든다는 생각에 한밭제일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다. 유천동 도마동처럼 동네 이름을 넣으면 훗날 교회가 부흥돼 예배당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포괄적인 명칭을 사용했다.


개척하면서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주님께서 자그마한 시험을 주셨다. 나는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 어려운 개척교회 시절이었지만 남에게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초창기 개척하면서 두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부턴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 않았다. 지금 어렵다고 받기 시작하면 평생 거지 목회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개척교회의 어려움이야 만만치 않았지만, 마음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겠다.’ 그런데 유혹이 왔다. 아내에게 언니 두 분이 있었다. 한 분 남편은 서울에서 법무사무소를 하고 계셨고 한 분 남편은 군 장교였다.


이분들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처제가 사모가 돼 개척교회를 한다니 어려운 줄 알고 십일조를 우리 교회에 보내겠다는 제의를 해 왔다. 아내에게 이 말을 듣고 그분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당시에는 초신자들이라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말씀을 향하고 있었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졌다. “함께 망하려면 무슨 짓을 못하오!”


지금도 십일조를 갖고 장난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지 모른다. 절대로 하나님의 소유인 십일조를 내 마음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선악과다. 내 마음대로 따 먹었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꼴불견인 존재들이 있다. 남의 것 갖고 생색내는 인간들이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다. 분명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면서 제가 영광을 다 받아버린다면 이보다 더한 불경죄가 없다. 십일조는 반드시 영적인 꼴을 먹는 출석 교회에 드려야 한다. 만약에 누구든 선교하고 돕고 싶으면 십일조를 제외한 몫을 떼어 도와야 한다. 그게 어려우면 교회에 청해서 선교 헌금을 배정하도록 해야 한다.


어렵게 시작한 개척이지만 주님의 손길과 사모의 뼈를 깎는 희생 아래서 한밭제일교회는 계속 부흥되고 있었다. 1년이 되니 교회학교 학생들을 제외하고 청장년이 30여평 예배당에 어느 정도 찰 정도로 모였다. 무언가 될 것 같았다. 그냥 좋은 예감이 계속 솟아났다. 정말 행복하게, 후회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던 아내의 아픔도 잠시였다. 워낙 지혜로운 사람이요, 주님 사랑에 강하게 잡혔던 사람이었다. 주님 사랑의 품에서 거룩하신 그분의 어루만지심으로 치유를 받아 건강한 영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주님과의 사랑에 빠져 남편의 결핍된 사랑에 그다지 매이지 않았다. 오직 목양 일념으로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던 우리는 부부이기 전에 동역자로, 복음의 전사로 열심히 찬양을 드리면서 목양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됐다. 교회는 계속 좋은 일들로 내일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하는 중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주님과 나만의 비밀의 방에서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의 대화를 나누시던 그분이 깊은 감동을 주셨다. “성전을 건축하라!”


개척하면서 3년 안에 성전 건축을 목표로 했으니 그렇게 조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교회는 계속 부흥되고 있었고, 그대로라면 내년쯤 교회를 지어도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우리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초신자였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성전을 짓는다면 10만원 헌금할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를 지으라신다. 무조건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예나 지금이나 감동을 받으면 즉시 순종하려 애를 쓰는 나는 이튿날 새벽기도회 때 감동 받은 것을 그대로 선포해 버렸다. 새벽 용사들은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했고 우리는 그날부터 비상기도에 돌입했다.


성전을 건축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선포한 후 교회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성도들은 금식과 부르짖는 기도에 힘을 모았다. 비록 물질은 없지만, 창조의 손길을 사모하며 간절히 천국 보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현실은 절대 녹록지 않았지만 우린 두렵지 않았다. 돈이라고는 빚 얻어 들여놓은 건물 전세금 380만원이 전부였다. 성도들이 조금 모인다지만 워낙 가난한 분들이었다. 청년들과 학생들이 많았기에 재정적으로 현상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될 줄로 확신했다. 오직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주님 한 분뿐이었다. 주님은 상황과 관계없이 당신을 신뢰하고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82년 3월 대전 서구 도마1동에 대지 90평(297㎡)을 매입해 공사에 들어갔다. 교회를 개척한 지 2년 1개월 24일 만인 82년 5월 9일, 우린 감격스러운 새 성전 입당예배를 눈물로 드렸다. 새 예배당 입당과 함께 강도사였던 나는 목사 안수라는 영광의 관을 쓰게 됐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 누리려면 의무와 책임 다해야


장자권은 상속권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인 나에게는 당연히 누릴 권세가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5~17)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말씀들을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자녀의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왕정 시대에 왕의 자녀라면 그에게는 당당하게 누릴 권세가 있었다.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가 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진짜다. 진짜라면 당연히 내 아빠, 아버지가 주관하시는 나라에서 큰소리를 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엔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이 세상에서도 권리를 누리려면 의무를 감당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 원리는 당연히 따라온다.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거룩한 삶을 살지도 않고,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기지도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자녀라는 명분만으로 무조건 큰소리를 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의무, 자녀의 본분을 잘 감당하면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본분을 잘 감당하며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가지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위의 말씀을 토대로 네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첫째,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둘째,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있는가. 셋째,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가. 넷째,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면 당연히 누릴 권세를 누리고 있는가.


위의 네 가지 질문에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과 영으로 신실하게 “아멘, 아멘”이라고 외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다시 위의 질문을 스스로 한 가지씩 해 보자.


첫째,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이 질문에 습관이 아닌 진심으로 ‘아멘’이라고 한다면 이어 ‘내가 영접한 예수님이 내 안에 현재 존재하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지금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는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등장한다. 자타가 인정하는 교회였다. 스스로 부요해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라면 대단한 교회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교회가 직면한 문제가 있었다. 예수님이 그 교회 안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시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그 전에 내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가.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신다면 당연히 그분은 말씀으로 내 안에서 살아 계신다.


이제 중요한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강조했듯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살아 계시는가’하는 문제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다. 내가 종이고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면 나는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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